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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티재

■ 나의 살던 고향 ◇─/전설의 고향

by 황인홍 2017. 3. 28.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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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티재
(영동군 용산면 율리 산 40-4) 


솔티재 표지석은 영동읍에서 보은 방면으로 유원대학교(구 영동대학교)를 지나서 
약 1km 정도 더 가면 고갯마루 정상 부분에 있습니다.




솔티재 표지석 아래엔 용산면과 영동읍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세겨져 있습니다.
















<솔티재에 얽힌 전설>


열부열(烈不烈)의 열녀(烈女)


영동지방에 열부열의 열녀라는 아주 색다른 열녀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열부열의 열녀' 란 열녀이면서 열녀가 아니라는 뜻이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병든 남편을 부축하고 젊은 여인이 솔티재를 넘고 있었다. 여인은 보은(報恩) 땅을 벗어나 영동고을로 접어든 것이다. 스물을 갓 넘은 젊고 아름다운 여인은 서산너머로 사라져 가는 짧은 가을 해를 원망하면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남편을 힘겹게 부축하면서 고개를 넘고 있는 것이었다.


이들 부부는 비록 영동고을에 이르렀다 해도 누구 하나 반겨줄 사람이 없는 그런 처지였다. 그저 이 집 저 집 동냥을 하면서 막연한 기대를 해볼 뿐이었다. 마을에 닿은 여인은 어느 부잣집 대문을 두드렸다. 부잣집 주인은 마침 상처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장가를 들지 않고 혼자 살고 있는 홀아비였다. 사정 이야기를 들은 주인은 여인의 처지를 딱하게 여기곤 구석방 한 칸을 내어주고 그곳에서 살도록 했다. 대신 그 여인은 그 집 살림을 보살펴 주기로 하였다. 이렇게 된 일은 주인에게도 여인에게도 서로 좋은 일이었다.


홀아비 주인은 마음씨가 좋은 사람이었다. 여인의 병든 남편에게 좋은 약도 구해주었고 병이 낫도록 많은 힘을 쓰기도 하였다. 여인은 주인의 착한 마음씨가 너무도 고마워서 남편의 병시중을 드는 틈틈이 주인 집 살림을 정성을 다해 보살펴 주었다.


주인은 한약에 대한 약간의 지식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젊은 여인의 남편에게 이것저것 약을 바꿔 먹여보기도 했다. 그러나 병세는 좋아지지를 않았다. 주인은 여인을 동정하기 시작하였다. 주인 홀아비의 입에서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한숨이 나오기도 하였다. 그 한숨은 병자의 아내로서 여인의 팔자가 너무 불쌍하다는 그런 생각에서 나오는 한숨이었다.  


얼마동안이나 이렇게 지나자 홀아비 주인이 여인을 바라보는 눈에는 차츰 애정이 일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자기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해준다는 것에 대한 고마움, 너무나 불쌍한 여인의 팔자 등이 어우러져 여인에 대해 사랑하는 마음이 자신도 모르게 싹튼 것이었다.


이 젊은 여인에 대한 소문은 바로 온 마을에 퍼졌다. 젊은 아내가 병든 남편을 마다하지 않고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며 동냥까지 해가며 병 수발을 한다는 것에 대해 모두들 감동을 했다. 그리고는 이 여인을 영동열녀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이 여인의 하루 일은 주인 집 마당 쓸기부터 시작되었다. 감나무 잎이 수 없이 떨어지는 넓은 마당을 힘이 드는 줄도 모르고 말끔하게 쓸고는 다음에는 부엌일을 시작했다. 계집종과 하인들을 부리면서 영동열녀는 마치 주인마님처럼 능숙하게 일을 처리해 나갔다. 주인 홀아비는 부엌일이며 살림살이를 도맡아 하는 영동열녀의 모습에서 죽은 아내의 부지런함을 찾아볼 수 있었다. 주인 홀아비는 그 여인의 부지런함이 마음에 들었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의 성격에 마음이 끌리었다. 그리하여 어느 날 저녁 홀아비 주인은 조용히 영동열녀를 불러놓고는 "
주제 넘는 청인 줄은 아나 내 그대에게 한 가지 청을 하리다. 그대 남편의 병이 나을 때까지 약도 대어 주고 치료에 드는 모든 경비도 내가 대어 줄 터이니 나하고 같이 사는 게 어떻겠소?" 하고 말하였다.

말하자면 회복이 거의 불가능하지만 남편 시중은 끝까지 들면서 한편으로는 자기와 부부의 인연을 맺자는 청이었다.

열녀는 이 말을 듣고 이 일을 어떻게 하여야 할 줄을 몰라 한참동안이나 망설였다. 어차피 남편은 회복될 수 없다. 그저 소원이라면 남편에게 좋다는 약은 무엇이나 마음껏 써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러할 때에 주인은 그 약을 끝까지 대어준다지 않는가. 고맙기로 말하면 이보다 고마울 데가 또 어디 있겠는가.

열녀는 그 날 밤 이 문제를 남편과 의논하였다. 남편도 자기가 얼마 살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무엇을 바라랴, 좋다는 약이나 먹어보고 죽으리라 하고는 아내에게 주인에게 가는 것을 허락하였다. 


이 말을 들은 아내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남편에게 좋다는 약은 얼마든지 쓸 수 있으니 좋고, 한편으로는 주인 어른의 고마운 보살핌에 대한 보답을 할 수 있으니 이 또한 좋은 일이 아닌가.
이렇게 여러 가지 일들이 서로 얽혀 그녀를 울리고 만 것이었다.


주인에게 동거를 승낙하면서 열녀는 한 가지 조건을 내세웠다. 그것은 병든 남편이 죽은 뒤 그 남편 무덤 옆에 자기도 죽게 되면 나란히 묻어달라는 것이었다. 주인은 열녀의 조건을 쾌히 승낙하였다.


그 날부터 한 지붕 밑에서 한 여인이 두 남편을 섬기는 색다른 생활이 시작되었다. 낮에는 병든 남편의 시중을 들고 밤이 되면 안채에서 새 남편인 주인을 섬기었다. 두 남편을 섬겨야 하는 열녀는 자기와 같은 기구한 운명을 가진 여자가 이 세상에 또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보기도 하였다. 이렇게 살면서 시간은 점점 흘러갔다. 그러나 남편의 병세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는 그녀의 지극한 간호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현재의 남편은 열녀를 아내로 둔 입장에서 아내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위로하기 위해 많은 돈을 들여 남편의 장례를 후하게 치러주기로 하였다. 남편의 상여가 부자 집 구석방을 떠나 장지에 도착하였다. 미리 가 있던 인부들은 시체를 묻을 구덩이를 벌써 파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죽은 남편을 묻을 구덩이 바로 옆에는 장차 열녀가 묻힐 구덩이가 하나 더 파여졌다. 


열녀는 지금의 남편에게“장차 내가 죽으면 묻힐 구덩이니 내 키에 맞나 한 번 들어가 보아야겠다”하고는 구덩이로 들어가 반듯하게 누웠다. 그런데 구덩이에 들어가 누운 열녀는 일어나려 하지를 않았다. 그녀는 미리 준비해 가지고 간 독약을 입에 넣고는 숨을 거둔 것이었다. 


그녀는 새 남편을 이 세상에 버려두고 본 남편 곁에 묻힌 것이다. 세상에서는 이렇게 살다가 죽은 열녀를 두고‘열녀이면서 열녀가 아닌 열녀’라고 말한다. 본 남편을 생각하여 자기의 목숨을 끊은 것은 열녀라고 할 수 있지만, 자기가 스스로 맞은 새 남편을 두고 죽어간 것은 열녀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같은 열녀를 두고 후세 사람들은 열부열(烈不烈)의 열녀(烈女)라고 말해 오고 있다. <영동군지>